정신 못 차리는 4월의 끝에 만난 사람들과 나.

3일을 멘탈이 갈린 채로 살았다. 정신을 좀 차려보려고 다짐을 위해 글을 쓴다.
정신을 잡으려고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 책을 잡아서 힘들 때마다 읽다가 완독했다.
읽으면서 속상해서 몇 번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을 그 어떤 소설이나 시보다 더 슬프게 읽게 될 줄이야.

 

지난 주 목요일, 투자사 심사역 님와 미팅을 했다. 매주 있는 미팅이었지만 그 날은 유독 충격적이었다.
피드백이 충격적이었던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지금까지 했던 것들이 충격적이었다고 해야하나.
뭔가 아예 뭔가를 잘못 생각하고 있거나, 핀트를 잘못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냥 아예 헤매고 있구나.
이미 투자를 해서 원팀처럼 도와주고, 매주 follow-up을 해줬던 심사역님을 납득시키거나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내가 지금 하는 방식을 어떤 누구에게 설득할 수가 있을까.
사실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무언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하지만 방법을 모르니까 조급해만 하고, 그냥 애써 무시하거나 '잘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행복회로 돌리지 않았나 싶다. 그 날 미팅을 기점으로 눈 앞에 선연하게 떠올랐다. 그것들을 마주하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냥 정신 못차렸던 거 벌 받는 거지 뭐) 그 날의 기록을 적었지만 차마 공개로 쓸 수가 없을 정도였다. 너무 날 것의 감정들이었기 때문에.

끝없는 자책의 굴레, 모든 것을 놔버리기를 계속 했던 것 같다. 이렇게 무능할수가.
일목요연한 척 정리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 사명을 따르고 싶지만 현재로서는 역량이 부족하고 현실적으로 지금 가지고 있는 리소스, 돈, 시간으로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면, 사명을 어디까지 버려야 하나?
- 네가 하고 싶은 일 말고,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하라. 진짜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사명에 반하게 된다면, 나의 뜻이나 사명을 버릴 각오까지 난 되어 있는가?
- 그럼 나는 사명 때문에 사업도 하고 대표도 한 건데, 사업을 할 이유가 없어지는 걸까?
- 사명 사명 말만 했지만 나에게 사명이 어디까지 중요할까. 사명이 너무 얄팍한 것은 아닌가?
- 나는 지금 잡고 싶은 문제는 따로 있고, 하고 싶은 솔루션 따로 있고, 또 돈을 벌고 싶어서 잡고 싶은 타겟이 따로 있다. 진짜 엉망진창이다. 기본이 안 되어 있다.
- 동시에 위의 모든 생각만 하며 괴로워하는 것으로 봐서, 생각이 너무 많다. 어차피 나는 지금 애송이라 아무리 고민해도 답을 모른다. 아직까지 실행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면서 무슨 철학자도 아니고 생각을 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쓴다.

 

생각해보면 작년 하반기는 거의 아포피스 완성하면서 아포피스로 여러 공모전 등을 통해 AC, VC들 만나면서 생각을 넓히고, 사무실 구하고, 예창패 진행하고, 투자를 받고.
1월에 아포피스 정식 출시하면서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했다. 2-3월은 인터뷰로 70명을 만나보면서 다 보내고 4월은 사실상 갈피를 못 잡고 날렸다. 인터뷰까지 열심히 하고는, 그를 잘 잇지를 못했다.
4월이 진짜 아프다. 4월을 완전 착각과 조급함 속에 보내버렸다.

 

그런데 상태가 가장 안좋았던 3일 동안, 어쩌다보니 올해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게 됐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추려서 적어보려고 한다.

 

 

1. 다른 창업 팀 대표를 하고 있는 친구와의 40분 대화
창업을 한 지 3년 정도 된 팀이라서 창업 선배다. 같은 사무실 층을 쓰고 있는데, 고맙게도 답답한 마음으로 사무실에 앉아있던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줬다.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어서 굉장히 솔직하고 좋은 대화를 하게 됐다.

"흔들리지 않으면 사업이 아니니까요."

"오로지 바텀업으로만 시작해서 그저 고객의 문제에만 집중하면 확실히 시장의 이해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이 문제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지,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시장이 얼마나 큰지... 탑다운으로 보지를 않으면 그런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대화를 하면서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분야에 관심이 많은 다른 친구를 소개해준다고 해서, 그 친구도 만나볼 생각이다. 그냥 모르겠다. 지금 내가 방법을 모르는 것 같으니까 방법을 구하자. 닥치는대로 누구든 만나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2. 그로스해킹 컨설팅 팀, 마켓핏랩 야유회에 참석했다.

위의 생각과 연장선으로 이렇게 멘탈이 갈려있을 바에야 어디라도 가서 배우기라도 하자라는 생각으로, 초대한 사람에 한해 외부인 참석이 가능한 마켓핏랩 야유회에 갔다. 양양에서 4박 5일의 긴 기간동안 그로스, 마케팅 쪽을 전문 분야로 하는 분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사실 완전 멘탈이 나가있을 때 간거라 걱정을 많이 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올텐데, 상태가 가장 안좋을 때 간다는 점. 상태가 가장 안좋을 때 나오는 내 특징이 폐쇄성이 강해지고 내향성이 엄청 강해진다는 거다. 
정신에 금이 갔다면 차라리 깨부수자라는 심정으로 가서 보고 듣고 열심히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많은 사람들과 거의 필터링을 하지 않고 얘기했다. 나의 일과 내가 지금 헤매고 있는 것들과 문제들을 말이다.

원래부터 계속해서 관심을 가진 팀이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서 여러가지를 듣고 경험해보니 인상적인 점이 굉장히 많았다.

 

• 대부분의 팀원들이 부캐(리모트-프리랜서)로 활동한다는 것이 굉장히 독특한 구조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한국에서. 그런 느슨하고 자유로우면서도 치열한 구조를 만들 수 있던 것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어떻게 이런 팀을 만들 수 있었을까? 잘은 모르지만 이런 운영 구조는 '업業'에 대한 전통적이지 않은 확고한 신념이나 가치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부캐로 활동한다는 것은, 이미 본업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도 그랬다) 굳이 이걸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본업을 통해 이미 돈도 벌고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으로 이 곳에서 부캐로 활동을 한다는 것은 돈 이외에도 강력하게 무언가를 받는다는 뜻일 것이다.
• 그 중 하나는 치열하고 즐겁게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경험일 것 같았다. 하루만 갔는데도 그게 느껴졌으니까 말이다. <파워풀> 책에서 읽었던 게 생각났다. 직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가치는 복지나 인센티브보다 한 문제를 정말 멋진 사람들과 치열하게 풀어간다는 경험이라고.
  
• 또한 결국 대표님을 롤모델로 하는 사람들이, 대표님을 중심으로 모여있는 곳이 아닌가 싶었다. 실제로 길드원으로 활동하시는 분과 말을 나눴을 때, 대표님을 보면서 실무자로서 오랜 기간 생생하게, 또렷하게, 싱싱하게 일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고 했다. 이 말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역시... 대표라는 위치는 꿈과 비전을 심어주는 사람이구나. 그게 정말 강력하다면, 이런 방식으로 표현이 되는구나.
  
• 공유회를 하는 도중에도 지속적으로 공유회를 더 잘하기 위한 짧은 회고를 하고, 더 좋은 질문을 함께 하기 위해 5-10분의 시간을 아무 옆에 있는 사람과 짝을 지어 논의한 후에 활발한 토론을 하는 것이 너무 멋있었다! 대표님이 짝을 지어 먼저 토론할 것을 제안하자마자 모두들 전투적으로 토론에 임했다. 길드원이 아니라고 해도 자유로운 발언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굉장히 멋있었다.
•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었다면(PMF), 고객의 언어로 다가가라(LMF). 모든 것은 철저하게 '사람들이 원하는 것'
• 나는... 일단 PMF부터 만들자...

또한 위에 들었던 나의 궁금증과 함께 대표님의 생각을 잘 볼 수 있는 영상이 있었다.
https://youtu.be/pgsAMqJ2StU

 

이런 것들을 경험할 수 있어서, 굉장히 뜻 깊었고. 그 자체로 에너지가 되어 다가왔다. 아직 내가 팀원들에게 주지 못하는 것들이라 팀원들이 이런 것을 많이 경험하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3. 거의 3년 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인데, 이 친구는 스타트업 초기 멤버로 들어가서 시리즈 B까지 함께 회사를 키운 친구였다. 
원래 초기 멤버로 들어간 팀원들은 회사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많이들 나오게 되는데. 정말 열심히 따라서 성장했다고 했다. 이 친구에게도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내 지금 상황을 다 솔직하게 얘기했다. (거의 징징거리고만 온 듯)

"부족한 건 당연한 거고, 부족한 걸 알고 있는거고, 그러면 이제 어떻게든 잘해내면 되겠네."
"얘기를 듣다보니까 옛날 생각이 많이 나네. 나는 지금와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면 과거처럼 안했을 것 같아. 과거에는 하나의 가설을 정말 오래 잡고 있었거든. 그 가설이 잘됐어. 그냥 운이 좋았던 거지. 근데 운이 안좋을 수도 있잖아. 운이 안좋을 확률이 크고. 운이 안좋았다면 시간, 리소스 다 날리게 되는 거지. 그 때로 돌아간다면 무조건 실험을 빠르게 해볼 것 같아."

 

 

4. 마지막으로 야유회에서 돌아온 후에 형민과 했던 짧은 대화

"널 믿어. 요즘 내는 아이디어가 재미가 없어. 너의 장점은 창의성이야."

 

 

어쨌든 정신 차리자.